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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치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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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지원은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 작성일 2025-09-07 12:42
  • 조회수138
“미국에 대한 이미지 상승은 없었지만, 더 깊은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 관대함이 또 다른 관대함을 이끌어낸다는 점입니다.”
— 이창근 교수

관대함은 국가 간에도 전염될 수 있을까?

2021년, 한국은 백신 부족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초기 코로나19 대응은 성공적이었지만, 이로 인해 백신 계약 체결이 늦어졌고, 수백만 명의 젊은 층이 “나는 언제쯤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이 한국에 얀센 백신 140만 회분을 기부한 것입니다. 이는 미국의 전 세계 백신 지원 전략의 일환이었고, 일종의 외교적 선의로 자국의 글로벌 이미지를 회복하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략은 효과가 있었을까요? 한국인들은 미국의 백신 제공에 감사하며 미국에 더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에 의미 있는 변화는 없었습니다,”라고 연구 공동저자인 이창근 교수는 말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백신을 기부받은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돕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습니다.”

이런 ‘선행의 확산(pay-it-forward)’ 효과는 외교적 호감도와는 별개로, 국제적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외교 원조의 힘을 보여줍니다.

백신 외교의 한계

소프트 파워 이론에 따르면 관대한 행동은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백신은 생명을 구하고, 눈에 보이며, 매우 실질적인 외교 수단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연구팀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 전후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백신이 미국산임을 알든 모르든, 또는 기부받았든 구매했든 간에, 미국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실망스러운 결과일지 모르지만 있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상 밖의 2차 효과

기부받은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을 살펴본 결과, 이들은 다른 나라에 백신을 기부하자는 데 훨씬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미국에 대한 감사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선의를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 성향과는 무관했습니다. 심지어, 별도의 실험에서는 미국이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지원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사람들(특히 중도층)이 한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더 강하게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중요한 건 누가 기부했느냐가 아니라, 그 기부가 다른 사람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입니다. 이건 단순한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일반화된 상호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연구진은 2021년과 2022년에 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2차례 패널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 한 번은 백신이 부족하던 시기, 또 한 번은 대부분의 국민이 백신을 맞은 이후였습니다. 변화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이중차분법(difference-in-differences)’ 접근을 사용했고, 기부받은 백신의 영향을 구분하기 위해 독특한 제도적 조건을 활용했습니다. 바로, 얀센 백신은 혈전 우려로 인해 30세 이상에게만 접종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연령 기준은 자연스러운 비교 구간을 만들어 주었고, 연구진은 30세 전후를 비교함으로써 기부 백신의 인과적 영향을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 이를 ‘회귀불연속 설계(regression discontinuity)’라고 합니다.

또한 두 번째 조사에서는 일부 응답자에게 미국이 백신을 기부하고 있다는 정보를 제시해, 정보 자체가 사람들의 외교 원조 지지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했습니다. 응답자 대부분은 자신이 맞은 백신의 원산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보 오류로 인한 결과는 아니라고 연구진은 덧붙입니다.

미래 외교 원조에 주는 시사점

이 연구는 외교 원조가 단순히 공여국의 호감도를 높이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협력의 고리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얼마나 좋아졌나”보다 “얼마나 이어졌나”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한 번의 관대함이 또 다른 선행을 촉진하는 것이, 단기적인 이미지 상승보다 훨씬 더 강력한 외교 수단일 수 있습니다. 정책적으로 보면, '선행을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가에 원조를 집중하거나, 원조 활동에 대한 커뮤니케이션(가시성)을 강화하는 것이 향후 협력 체인을 만드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논문 정보

제목: Paying It Forward: Vaccine Provision and Generalized Reciprocity in Foreign Policy Opinion
저자: 이창근, 배준범 (콜로라도 주립대, 전 KDIS 교수)
출판 예정: Public Opinion Quarterly
데이터: 2021–2022년 한국 성인 대상 2회 패널 조사, 무작위 실험 포함
연구 설계: 이중차분법, 30세 기준 회귀불연속 설계, 백신 원조 정보 제공 실험 포함